눈을 꾹 감은 오이카와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벚꽃 가지를 내밀고 있었다. 잠자리채를 든 이와이즈미는 조금 황당하다는 눈으로 오이카와를 보며 서 있었다. 저거 나한테 하는 말인가? 오이카와가 내민 벚꽃 가지를 보며 서 있는 이와이즈미는 낮게 한숨을 쉬곤 입을 떼었다.
“토오루.”
“응? 나랑 결혼할거야?”
“전에 우리 엄마가 그랬었는데,”
일본에서는 남자끼리 결혼을 못 한대.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의 등 뒤로 번개가 내리 꽂히는 모습이 보인 것도 같다. 사실 이와이즈미도 제 엄마에게 나중에 오이카와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부러 그 사실을 말하진 않았다. 당황한 얼굴을 한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에게 물었다.
“그, 그럼 하지메쨩 토오루 말고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거야?”
“뭐, 그래야겠지?”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의 뒤에는 다시 번개가 내리 꽂혔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크다. 이와이즈미의 말에 멍하게 서 있던 오이카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오이카와를 보던 이와이즈미가 당황한 것도 이 때였다.
“하지메쨩은 토오루가 싫어?”
“내가 널 왜 싫어해! 안 싫어해.”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가 조금 눈물을 그쳤다. 꾹 다문 입술과 크게 뜬 눈은 그 말이 진심이라고 온 힘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보며 물었다.
“근데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그건 어쩔 수 없잖아.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그 말에 오이카와는 아까 조금 그쳤던 눈물을 다시 줄줄 쏟았다. 아까보다 더 심하게 우는 오이카와에 이와이즈미는 다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눈물을 계속 훔치며 오이카와가 입을 떼었다.
“하지메쨩은, 히끅, 토오루가 싫은가 봐.”
“아냐, 안 싫어해!”
“거짓말! 됐어, 하지메쨩 미워! 토오루도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거야!”
이미 오이카와는 머릿속에서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낸 것 같았다. 그런 오이카와를 보며 한숨을 쉰 이와이즈미가 잠자리채를 내려놓고 오이카와의 앞으로 다가갔다. 벚꽃 가지를 든 손을 떨어뜨린 오이카와는 남은 한 손으로 계속 눈물을 닦으며 울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손을 잡아 내렸다. 그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고 이와이즈미를 봤다. 오이카와에게 눈을 맞추며 이와이즈미가 입을 떼었다.
“토오루. 내가 널 싫어할 일은 없어.”
“… 진짜로?”
“응. 난 죽을 때 까지 널 좋아할거야.”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피어 올랐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이내 다시 울상을 지었다. 입술을 삐죽 내민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손을 꾹 잡으며 입을 떼었다.
“그래두, 하지메쨩은 토오루랑 결혼 못 하잖아….”
오이카와의 말에 이와이즈미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잠시 뒤에 이와이즈미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입을 떼었다.
“그러면, 토오루가 결혼할 때 내가 꽃 비를 내려 줄게.”
“꽃 비?”
“응. 토오루 결혼식 날에 꽃 비가 내린다면 내가 계속 토오루를 좋아하고 있다는 뜻이야.”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다시 활짝 웃었다. 그 뒤에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평범하게 놀다가 헤어져 집에 돌아갔고, 오이카와는 잠들기 전에 작은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신님. 토오루의 결혼식 날에는 꼭 꽃 비가 내리게 해 주세요.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죽었다.
졸업식 날이었다. 길을 건너던 이와이즈미는 신호 위반으로 달려오는 차에 그대로 치였고, 어떻게 손 쓸 틈도 없이 이와이즈미는 그대로 떠나가 버렸다.
모든 죽음이 그렇듯 슬픔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었다. 장례식장에서 3년동안 동고동락 했던 같은 팀의 하나마키와 마츠카와, 그리고 유다와 사와우치와 시도는 어떻게든 눈물을 참아보려 애를 썼지만 그러질 못 했다. 결국 유다는 그를 포기하고 사와우치와 시도 뒤에서 울었다.
후배들은 더욱 힘들어 했다. 이와이즈미를 잘 따랐던 쿄타니는 충격이 큰지 울지도 못하고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앞에 앉은 와타리는 고개를 숙인 채 계속 눈물을 훔치고 있었고 야하바는 그런 와타리를 다독여 주면서 울었다. 킨다이치는 고개를 숙인 채 소리를 죽여가며 덜덜 떨었고, 쿠니미는 킨다이치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로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 사이에서 담담한 사람은 오이카와 뿐이었다. 이와이즈미를 알고, 좋아했던 사람들이 찾아와 그를 추모하고 명복을 비는 동안 오이카와는 혼자서 울지 않고 있었다.
화장이 끝난 뒤 유골함을 불단에 안치한 뒤에야 오이카와는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장례식 내내 이와이즈미의 부모님을 위로해주고 식을 도와주었던 부모님께서는 씻은 뒤에 바로 잠드셨고, 형 내외는 도쿄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씻고 나온 오이카와는 이불 위에 누웠다. 정갈하게 깔려 있던 이불의 모양이 일그러지고 주름이 졌다. 그 위에서 오이카와는 조용히 누워 있었다. 흰색 천장. 옷걸이에 걸려 있는 다시 입을 일 없는 교복. 한 쪽 벽면에 자리한 일본식 창을 볼 때, 별안간 그 모습이 흐려졌다.
장례식 내내 오이카와는 담담했다. 그러나 속은 그 자리에 있었던 이와이즈미의 부모님만큼 곪아서 썩어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연인이었다. 태어난 직후부터 줄곧 함께했던 친구였다. 괜찮을 수 없었다.
난 죽을 때 까지 널 좋아할거야.
별안간 오이카와는 어린 시절 제가 이와이즈미에게 청혼했을 적의 일을 기억해 냈다. 그 때의 이와이즈미는 자신은 죽을 때 까지 오이카와를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 말 대로였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연인이었고, 바로 전 날에도 말로는 툴툴거리면서 더없이 다정하게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으로 돌아 누운 오이카와는 한없이 울었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문을 열고 이와이즈미의 방 안에 들어섰다. 이와이즈미의 방 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고등학생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오이카와는 다시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뒤에서 이와이즈미가 툭 치면서 안 들어가고 뭐 하냐며 물을 것만 같았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책상 위에 봉투 하나를 조용히 올려 놓았다. 청첩장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짙은 갈색의 책상 위에 덜렁 올라간 흰 봉투가 이질적이었다. 잠시 눈을 내리깐 오이카와가 입을 떼었다.
“나 결혼해, 이와쨩.”
낮은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이리저리 맴돌다가 작아져 사라졌다. 그를 시작으로 오이카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학생 때 알게 된 애야. 처음엔 평범하게 친구였는데 만나다 보니 좋은 애라서 결혼까지 하게 됐어.”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오이카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이와이즈미를 사랑했다. 평생 열 여덟 살에 매여 있을 이와이즈미를, 오이카와는 아마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이와쨩.”
잠시 입을 다문 오이카와는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고민했다. 이와이즈미의 책상 앞에서 한참을 조용히 서 있던 오이카와는 고민 끝에 다시 입을 떼었다.
“난 괜찮아. … 난 지금 행복해.”
이야기를 마친 오이카와는 다시 발을 떼어 이와이즈미의 방을 나섰다. 찰칵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이와이즈미의 방은 금방 온기가 사라져 다시 차가워졌다. 책상 위에 자리한 흰색 봉투를 빼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이카와는 서른이 되었다. 그는 다가오는 4월에 결혼을 한다.
벚꽃이 만개하는 4월에 오이카와는 결혼을 했다. 결혼 식의 사회는 하나마키가 봤고, 마츠카와는 축가를 불러주었다. 두 사람이 직접 나서서 해 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결혼식은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오이카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찾아와서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해 주었다.
식이 끝난 이후 피로연에서 친척 어른들에게 이리저리 불려 다니던 오이카와는 형이 나가서 조금이라도 쉬라고 내보낸 뒤에야 겨우 숨을 돌렸다. 보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걸음을 옮기던 오이카와는 문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하나마키와 마츠카와를 보았다.
“맛키랑 맛층? 왜 그래?”
“아, 오이카와?”
“야, 바깥 좀 봐.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야?”
마츠카와의 말에 오이카와는 두 사람 사이를 지나쳐 밖을 보았다. 그리고 보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하늘에서는 믿을 수 없게도 꽃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는 분명 어두운 색의 구름이 떠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비가 내리기 마련이지만 참으로 황당하게도 지금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분홍색의 고운 꽃잎이었다. 입을 쩍 벌리고 서 있던 오이카와의 머릿속에는 순간 어릴 적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토오루 결혼식 날에 꽃 비가 내린다면 내가 계속 토오루를 좋아하고 있다는 뜻이야.
오이카와는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없게도 저게 끝입니당... 뒷내용 구런거 엄슴
정말로 우연히 떠올린 소재를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덕분에 막힘없이 술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