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오이/네가 없는 세상
좀비물이지만 전투 묘사는 나오지 않음
사망소재 있음
한 달에 한 번, 저 담 너머로 나갈 때마다 적는 유서는 아마 죽을 때까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분명 우리는 죽음을 각오한 채 나가는 것이고, 한 번 나갔다 올 때마다 돌아오는 인원은 줄어들지만 정말 죽을 정도로 큰 사건을 겪지 않는 이상 내 생각은 크게 달라지는 일이 없지 않을까.
나는 우시지마 와카토시. 19살이고, 올해 생일이 지나가면 20살이 된다. 군 장교인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편지를 전할 가족이 없으므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다.
너를 처음 만난 것은 정식으로 군에 입대한 15살의 봄이었다. 7살에 어머니를 잃고 10살에 아버지를 잃은 나는 5년동안 그것들을 섬멸하는 데에 나의 온 인생을 바칠 것이라 다짐했었다. 긴 시간동안 안고있던 그 잔잔한 분노는 너를 본 순간 모두 잊어버렸다.
처음엔 네가 조금 능글맞고 가벼운 사람인 줄 알았다. 훈련을 받을 때에는 그래도 할 때는 진지하게 하는구나 했고, 처음 담 너머로 나갔을 때에는 그 투견 같은 모습을 보며 너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했고, 다시 한 번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막 바이러스가 퍼지던 때에 날뛰던 좀비에게 머리를 뜯겨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눈 앞의 것들에 집중하다 뒤에서 다가오는 좀비에게 당해 돌아가셨다. 그 뒤로 나는 내내 혼자였고, 누구보다 좀비가 사라지길 바랐다. 다른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네 앞에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5년동안 나는 눈 앞이 가로막히고 귀가 틀어막혀서 그것들을 절멸하는 것 이외엔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너를 보는 순간 다시 세상이 밝아졌고,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널 사랑한다. 곪아 빠지고 덧난 이 세상에서도 너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할 정도로 널 사랑한다. 사랑한다 오이카와. 내가 죽기 전엔 이 유서가 너에게 전해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고, 네가 죽는다면 나는 다시는 펜을 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너 하나만 바라보며 붙잡고 있는 것이므로.
오이카와. 부탁한다. 오래 살아라.
선배는 유서를 쓸 때마다 만약 자신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이것을 읽어 본 뒤에 내가 원하는 대로 처분하라고 하셨다. 유서의 주인공에게 전하거나, 전하지 않고 태워 버리거나. 맡기는 것은 내 쪽이니 나의 판단에 맡긴다고 하시면서.
그 판단을 해야 할 때는 생각보다 일찍 다가왔다. 선배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었다. 좀비에게 물린 오른팔을 그 자리에서 절단했지만 감염은 생각보다 빨랐고, 선배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사살을 요청했다. 전우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선배는 죽었다.
선배와 같이 사용하던, 이제는 한동안 나 혼자서 사용하게 될 방으로 돌아와 나는 선배의 유서를 모두 읽었다. 투박하게 두어 번 접은 편지는 한 페이지 가득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 주인공의 이름을 선배는 펜을 짓눌러 지워 버렸지만, 나는 그 주인공을 알고 있다.
“무슨 일이야? 시라부 군이 나를 부르고.”
그는 태연한 얼굴로 웃으며 나를 만났다. 바로 어제 전우를 잃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가 선배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은 꽤 유명한 이야기라 놀랍지도 않다. 나는 말 없이 주머니에서 선배의 유서를 꺼내 건넸다.
“이게 뭔데?”
“일단 읽어보세요. 당신이 읽길 바라는 사람이 있으니까.”
의문 어린 얼굴로 그는 유서를 받아 펼쳤다. 천천히 편지를 읽어 나가던 그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서야 그의 눈가가 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입굴을 씹으며 편지를 계속 읽었다. 종국에는 편지를 든 손을 떨어뜨렸다. 그의 눈가에선 어느새 눈물이 방울져 흐르고 있었다.
“잔인하네, 우시와카는.”
그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무너져내렸다. 나보다 키도, 덩치도 훨씬 큰 그는 이 순간 가장 나약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