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담이설 / 만남
2018년 6월 9일
무기력조 온리전 <오늘도 0%입니다>에 나오는 회지 샘플
귀신 보는 츠키시마를 비롯한 쿠니미, 켄마, 아카아시가 등장하는 이야기
부담스럽다.
3세트에 걸친 시합 내내 한 생각이었다. 아까 카게야마의 이야기를 하던 1학년 두 명 중 비교적 작은 쪽은 중간중간 카게야마를 보던 것을 빼면 내내 내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원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의 시선이 내내 부담스러웠다.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나를 계속 쳐다보는 지 그 이유를 당최 이해 할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결국 시합이 끝나고 옷을 챙겨 입자마자 체육관을 벗어났다.
체육관 밖으로 벗어난 뒤 한 시름 놓으며 안경을 벗었다. 땀에 얼룩진 안경 렌즈는 꽤 더러워져 있었다. 한숨을 쉬며 목에 걸쳐 두었던 수건으로 렌즈를 닦았다.
“너, 눈 좋구나.”
별안간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돌린 쪽에는 체육관에서부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사람이 있었다. 조끼도 벗지 않은 티셔츠 위에 바로 져지를 걸쳐 입은 그 사람은 체육관에서 그랬듯 여전히 반쯤 감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에 다가온 그 사람은 얼굴을 들이밀었다. 정갈하게 넘겨 가른 앞머리 밑으로 의욕 없어 보이는 얼굴이 훅 다가왔고, 나는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좋네. 깜짝 놀랐어.”
놀랐다는 말은 하지만 전혀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내가 안경을 쓰는 것을 보던 그 사람은 다시 입을 떼었다.
“너도 ‘이 쪽’ 사람이지?”
그 사람의 말에 다시 한 번 나는 움찔한다. 나한테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저 사람도 ‘이 쪽’ 사람인가? 눈을 동그랗게 뜬 나를 보며 그 사람은 다시 입을 떼었다.
“나는 너에 비하면 눈은 장님 수준이고, 대신 귀가 좋아.”
귀가 좋다는 건, 저 사람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걸까. 살짝 인상을 쓴 그 사람은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내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 있자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다른 데 가서 얘기하자. 여긴 좀 시끄러워.”
그 사람의 말에 나는 군말 않고 그 사람을 따라 발을 떼었다. 그 곳은 사람이 너무도 많아 복잡했다.
그 사람이 발을 멈춘 곳은 사람이 드문 학교 뒷뜰이었다. 햇빛이 잘 드는 벤치에 앉는 모습이 퍽 익숙해 보였다.
“쿠니미 아키라야.”
“응?”
“내 이름.”
“… 츠키시마 케이.”
그 사람-, 쿠니미의 말에 내 이름을 이야기했다. 그나저나 쿠니미라면 근처의 신사 이름이지 않나? 조금 고민하다 입을 떼어 물었다.
“… 이 근처에 있는 신사?”
“응. 그거 우리 신사야.”
거긴 딸만 태어난다고 들었는데 헛소문이었나. 고개를 숙이며 하품을 한 쿠니미는 느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도 알 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외가 쪽 사람들, 전부 귀가 좋거든.”
“내 눈이 좋은 건 어떻게 알았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너 같은 사람들 눈에 비친 걸로 사자들을 볼 수 있어. 그 모습이 선명할수록 눈이 좋은 거야.”
너는 내가 지금까지 봤던 사람들 중에서 제일 좋아. 쿠니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대로 서 있는데, 나른한 목소리가 내게 물어 왔다.
“너네 집안도 ‘이 쪽’ 이야?”
“아니. 우리 집은 나밖에 없어.”
“계속 눈에 보이면 불편하지 않아?”
“안경 쓰면 안 보여서 괜찮아.”
“안경?”
내 말에 벌떡 일어난 쿠니미가 가까이 다가와 다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 눈을 보다 손을 들어 안경을 들춰 보고, 다시 씌우고를 반복하던 쿠니미가 뒤로 물러나며 다시 물었다.
“그 안경, 어디서 난 거야?”
“엄마가 다니시는 절에서. 눈 얘기도 거기서 들었어.”
내 대답에 쿠니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벤치에 앉았다. 나는 쿠니미를 보다가 입을 떼었다.
“너는 집안이 전부 ‘이 쪽’ 이야?”
“응. 먼 조상님께서 신님을 도와주셨다가 얻은 능력이래. 모계유전으로 이어지고 있어.”
쿠니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쿠니미 신사 전설이라면 이미 유명하기도 하고, 옛날에 형에게서 들은 적도 있지만 당사자의 입으로 들으니 더 현실감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쿠니미는 내가 조용하다고 느끼는 곳에서도 많이 시끄러울까.
“뭔가… 신기하네.”
“뭐가?”
“나는 ‘이 쪽’이긴 해도 주변이 전부 평범한 사람들이라…. 너네 집안처럼 ‘이 쪽’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어.”
“그래?”
내 말을 듣던 쿠니미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느냐는 내 질문에 쿠니미는 선배들이 찾을 테니까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며 되물었고, 그제서야 선배들이 다시 기억난 나는 쿠니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저기….”
“응?”
“‘이 쪽’ 사람들은 언제부터 존재했던 거야?”
내 물음에 쿠니미는 걸음을 멈췄다. 몇 걸음 뒤에 있는 나를 돌아본 쿠니미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언제부터, 가 아니야.”
“……”
“처음부터 있었어.”
이곳에 사람들이 생겨나고 국가들이 분열하기 전부터, 우리들은 있었어. 사람이 많은 곳이든, 적은 곳이든. 어느 곳에나 우리는 존재해. 그걸 아무도 모를 뿐이야.
쿠니미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곤 다시 걸음을 떼었다. 바람이 불었다. 나는 져지를 잠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