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담이설 / 학교 이야기
2018년 6월 9일
무기력조 온리전 <오늘도 0%입니다>에 나오는 회지 샘플
귀신 보는 츠키시마를 비롯한 쿠니미, 켄마, 아카아시가 등장하는 이야기
액정에 띄워진 이름과 숫자 열 한 개가 낯설다.
‘くにみ
000-0000-0000’
쿠니미와는 헤어지기 전에 번호를 교환했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 모르는 게 많을 테니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며 받아간 것이었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 쯤인데 아직 연락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뭐, 특별한 용건이 없다면 안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거의 초면인 데다가 친하지도 않고. 오히려 아무런 연락이 없는 쪽이 더 편했다.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 데 벨소리가 울렸다. 액정을 확인하니, 쿠니미에게서 온 전화였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괜히 혼자 오싹해서 팔을 한 번 쓸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와. 우리 신사 앞으로.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용건만 말하고 끊는 게 참 생긴 대로 논다 싶었다. 잠깐 액정이 꺼진 핸드폰을 보다가 한숨을 쉬곤 침대에서 일어났다. 신사까지는 꽤 거리가 있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준비해야 했다.
“왔어?”
신사 앞에 도착하니 쿠니미가 서 있었다. 왔냐고 한 번 물은 쿠니미는 바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따라오라며 걸음을 떼었다.
“어디 가는거야?”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자꾸 여자애 목소리가 들린대. 가서 얘기 해 봐야지. 짧게 이야기를 마친 쿠니미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앞서 걷는 쿠니미의 뒷모습을 보다가 물었다.
“왜 그런 것들을 알아야 하는 건데?”
내 물음에 쿠니미가 뒤를 돌아 봤다. 정갈한 앞머리 아래로 보이는, 꽤나 곱상한 얼굴은 처음 만난 날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눈에는 귀찮음이 그득했다. 나를 보다가 한숨을 쉰 쿠니미는 다시 몸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
“너 같은 사람들한테는 이런 걸 알려줘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
“나 같은 사람?”
“어. 드물게 일반인 사이에서 태어나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그 규칙 없었으면 난 너 모르는 척 했을걸.”
너네 집안은 너 빼면 다 일반인이라며. 처음엔 왜 그렇게 쳐다봤느냐 물으니 ‘이 쪽’인 것 같긴 한데 안경 때문에 긴가민가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안경을 벗은 걸 본 뒤에야 확신이 생겼다고 쿠니미가 얘기했다.
“지금은 뭐 하러 가는 거야?”
“아아, 가면서 설명하려고 했는데 깜빡 잊었네.”
죽은 사람 설득하러 가는 거야. 이어서 들려온 쿠니미의 말은 꽤 의외의 것이었다. 제령이나, 퇴마 같은 더 대단한 것을 생각했는데 그저 이야기 뿐이라니. 내 속을 읽기라도 한 건지, 다시 쿠니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남자라서 제령 같은 건 못 해. 그건 우리 누나들이나 어머니 일.”
“하는 일이 다 달라?”
“이 귀, 모계 유전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여자들 능력이 더 좋아. 나 같은 남자들은 그냥 잘 얘기하면서 달래는 거.”
“그렇구나….”
“그러니까 나중에 강한 사람들 만나면 쫓아가서 좀 보여달라고 졸라 봐.”
그건 무리인데. 쿠니미의 말에 속으로 조용히 태클을 걸며 입을 다물었다. 다시 대화가 끊겼고, 쿠니미는 계속 걸었다. 나는 조용히 쿠니미를 뒤쫓아갔다. 한참을 걷던 쿠니미가 멈춰 섰다. 따라 서서 돌아본 곳은 정말로 평범한 초등학교였다.
학교를 보고 있는데 유독 어느 한 구석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안경을 살짝 내리고 그 곳을 보니, 주변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 했다. 그대로 멍하니 서 있는데 쿠니미가 몸을 흔들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안경을 제대로 올려 쓰고 고개를 돌리자 살짝 인상을 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빤히 보지 마. 홀릴 거야.”
쿠니미의 말에 그 쪽을 슬쩍 손으로 가리곤 발을 떼었다. 당연히 정문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쿠니미는 그를 지나쳐 후문 쪽으로 발을 떼었다. 정문으로 가지 않느냐고 묻자 걸음을 멈춘 쿠니미는 내 쪽을 돌아보며 입을 떼었다.
“이런 데서 정문으로 들어가면 큰일 나. 우리 같은 ‘이 쪽’ 계열 사람들이 오면 사자들은 화를 내거든.”
초등학교 때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동상이 움직인다는 얘기 들어 본 적 있지? 그거 실제로 볼 수 있을 걸. 쿠니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곤 다시 걸음을 떼었다. 나도 더 묻지 않고 걸음을 떼었다.
다행히 화장실은 후문 쪽에서 더 가까웠다. 문 앞에 선 쿠니미는 주머니에서 검은 천을 꺼내 내 쪽으로 내밀었다. 천과 쿠니미의 얼굴을 번갈아 보자, 천천히 입을 떼었다.
“내 눈, 가려 줘.”
“왜?”
“암묵적인 룰이야. 나는 보지 못하니까 눈을 가려야 해.”
“응….”
더 물으려다 그만두곤 천을 받아 들었다. 나중에 알려주겠지. 감은 눈 위로 검은 천을 덮었고, 혹여 풀릴 세라 뒤통수에 단단히 매듭을 지었다. 손을 들어 매듭을 확인한 쿠니미가 입을 떼었다.
“문 열어뒀다고 했으니까 그냥 들어가면 되고, 안경은 벗어.”
쿠니미의 말을 듣곤 안경을 벗은 뒤 조금 망설이다가 문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문을 열자마자 놀라서 주저 앉을 뻔 했다. 세상 누구라도 문을 연 순간 바로 피를 질질 흘리는 아이가 서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 할 것이다. 놀란 가슴을 붙잡곤 쿠니미의 손목을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는 옆으로 비켜 섰지만 여전히 우리를 보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모르는 척 발을 옮겼다. 우리를 쫓아오는 그의 기척이 느껴졌다.
대충 아무데나 세워 두면 되겠지. 화장실 한 켠에 멈춰 서고는 쿠니미 쪽을 돌아봤다. 나는 정말로, 바로 앞에 아이가 얼굴을 들이대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숨 막힐 듯한 무표정에, 이번에는 정말 놀라서 쿠니미의 손목을 놓치곤 주저 앉아 버렸다. 아이는 여전히 얼굴을 들이 민 채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그대로 있는데, 쿠니미가 입을 떼었다.
쿠니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생전 처음 듣는 언어였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종류는 250여 가지라고 하지만, 지금 쿠니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분명 그 중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는 처음으로 내게서 눈을 뗐고, 고개를 돌려 쿠니미를 봤다. 그리곤 입을 떼는 순간, 나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쿵쾅거리는 내 심장 소리나,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같은 다른 평범한 것들은 분명히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만은 스피커를 꺼 버린 것처럼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쿠니미가 눈이 좋지 않은 것처럼, 나는 귀가 좋지 않은 걸까.
쿠니미는 다시 입을 열어 무어라 이야기를 했다. 그는 말을 이었고, 쿠니미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가던 중, 아이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분명히 아무것도 들리질 않는데, 시끄럽다 못해 머리가 아파서 손을 들어 귀를 틀어 막아야 했다. 고개를 돌리니 쿠니미도 마찬가지인 듯, 귀를 막고 있었다. 천 위로 보이는 정갈한 눈썹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이는 입을 다물고 씩씩거리며 쿠니미를 노려봤다. 귀에서 손을 뗀 쿠니미는 설득하듯 다시 입을 떼었다. 이번의 말은 꽤 길게 이어졌고, 점점 표정이 평온해진 그는 무어라 질문하는 듯 했다. 쿠니미는 짧게 대답했고, 잠시 시선을 내리 깐 아이는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순간, 아이의 온 몸을 뒤덮고 있던 피가 말끔히 사라졌다. 내 쪽을 돌아본 그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벽을 통과해 사라졌다.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쿠니미가 입을 떼어 내게 물었다.
“갔어?”
“응….”
내 답을 듣고 난 뒤 쿠니미는 손을 들어 천을 벗었다. 쿠니미가 그러는 것을 본 뒤에야 나도 안경을 썼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다. 몸을 일으키며 입을 떼려는 나를 쿠니미가 만류했다.
“나가서 얘기하자. 바로 하면 부정 타.”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쿠니미는 핸드폰을 꺼내 메일을 보낸 뒤 가자, 하며 발을 떼었다. 나도 따라서 그 곳을 벗어났다.
올 때는 정문으로 나왔다. 교문을 빠져나온 뒤에야 쿠니미가 입을 떼었다.
“그 애, 옛날에 있던 선생한테 살해당했대.”
“살… 뭐?”
“보충 수업 중이었는데 애가 수업을 잘 따라가질 못하니까 홧김에 때려 죽였대. 저 뒷산에 묻었는데 여기로 돌아온거야.”
“그런데 와 보니까 선생은 없었고?”
“응. 전근을 가 버려서 계속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대.”
“어디로 간 거야?”
“그건 모르지. 걔가 결정할 일이야.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대화는 끊겼다. 쿠니미는 그 이야기를 끝낸 뒤 입을 다물어 버렸고, 나는 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아까 품었던 의문을 다시 기억해 내고, 그것을 물었다.
“왜… 그 이야기는 바로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런 얘기 있잖아. 죽은 사람은 자기 얘기를 하는 곳에 나타난다는 거.”
그거랑 같은 거야. 특히 방금처럼 사자들이 있던 곳은 끌어당기는 힘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더 강해져서 최소한 일주일 동안 그 화장실에선 비슷한 얘기도 하면 안 돼. 그러면 더 심한 사람이 올 지도 모르니까.”
“아까 그 애랑 얘기 할 때, 그건 어느 나라 말이야?”
“음…. 우리끼리는 사어(死語) 라고 불러.”
“사어?”
“말 그대로 사자(死者)들이 쓰는 말이야. 사람은 죽으면 살아있을 때 사용하던 언어를 잊어버리거든.”
“그러면 바로 그 말을 쓰게 되는 거야?”
“응. 우리처럼 ‘이 쪽’인 사람들은 하는 일이 이렇다 보니까, 죽기 전에 예습하는 느낌으로 하고 있대.”
그걸 어떻게 아는데? 우리 집안에 이 능력을 주신 신님이 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커 가면서 말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해 주셨어. 그래서 ‘이 쪽’에서 사용하는 사어는 전부 우리 집안에서 배운 거야. 내가 쿠니미 신사는 생각보다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다시 대화는 끊겼다. 쿠니미도, 나도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고 사이에는 발소리만이 채워졌다. 문득 쿠니미가 생각난 듯 아, 하며 입을 떼었다.
“그러고보니, 너 걔 목소리 들렸어?”
“아니.”
“그러면 너도 앞으로 이런 일 할 때 귀를 막아야 돼.”
“왜 그런 룰이 있는 거야?”
“너처럼 눈 좋고 귀 나쁜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볼 수만 있고 뭐라고 하는진 안 들리니까 대화가 안 되잖아. 그래서 어떤 사람이 저주를 내려서 죽였대. 그 뒤로 나는 당신을 보지 못합니다, 나는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고 알려주는 거야.”
생각보다 조금 섬뜩한 이유에서 생긴 룰이었다. 쿠니미는 자기네 신사에서 이어플러그를 받아 가라고 했다. ‘이런 일’을 할 때 쓰는 물건들은 꼭 절이나 신사를 통해 받아야 부정이 타지 않는다나. 일일이 캐 묻기도 귀찮아 그냥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았다.
*
‘오늘 저녁 6시쯤, 미야기 현 센다이 시에서 근무하던 40대 초등교사 니시오 씨가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흔적도 없고 평소 지병도 없던 니시오 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