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치일 뻔 한 오이카와를 밀친 이와이즈미는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에 온 몸을 부딪혔다. 이와이즈미의 몸은 그대로 튕겨져 나갔고, 차는 갈팡질팡 하다가 전봇대를 박고 찌그러 진 뒤에야 멈춰 섰다. 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나온 운전자는 크게 다친 것 같지 않았지만 이와이즈미는 아니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하나마키였다. 정신을 잃은 이와이즈미의 몸 위로 져지를 벗어 덮은 하나마키는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 중 한 명을 가리키며 신고하는 것을 부탁했고, 그제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 쪽에는 오이카와가 주저 앉아 있었다. 나는 오이카와 쪽으로 갔다.
“오이카와.”
“…….”
“오이카와, 정신 차려!”
내가 윽박을 지른 뒤에야 오이카와는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정신을 잃었는지 내 말에도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멍한 눈으로 날 보던 오이카와는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응급실로 이와이즈미를 옮길 때에야 다시 주저 앉은 오이카와는 닫힌 문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기 시작했다.
이와이즈미의 수술은 하루가 거의 다 지나간 뒤에야 끝이 났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다만 심하게 다친 오른쪽 다리는 앞으로 평생 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 말 대로라면 이와이즈미는 앞으로 배구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에 오이카와는 무너져 내렸다.
선수로서의 사형 선고를 받은 와중에도 이와이즈미는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찾아오신 이와이즈미의 부모님은 아들 곁에서 떠나질 못 하셨고, 뒤이어 찾아온 감독님과 코치님도 참담한 얼굴을 하셨다. 늦은 시간에 나와 하나마키가 집에 갈 준비를 할 때, 오이카와가 비척거리며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창 밖을 보고 계시던 이와이즈미의 부모님 두 분께서 고개를 돌리시자, 오이카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 해요.”
다 뭉개져서 정확하지 못한 발음으로 오이카와가 입에 낸 것은 사과였다. 그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이와이즈미가 사고를 당했을 적의 일을 기억해 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밀치고 대신 차에 치였었다. 죄송하다는 한 마디로 말문을 연 오이카와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저 때문이에요. 제가 좀만 더, 주변을 잘 봤으면 차에 치일 뻔 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럼, 이와쨩도,”
오이카와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나와 하나마키는 병실 안에서 고개를 푹 숙인 오이카와를 보다가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와이즈미가 정신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다음 날 학교가 끝날 때 즈음이었다. 이와이즈미의 사고 때문에 오늘 부 활동은 쉬는 날이 되었다. 이와이즈미의 소식을 듣자 마자 오이카와의 반으로 가 봤지만, 오이카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평소라면 여자애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그저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 오이카와의 앞에 서자,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 맛층….”
“이와이즈미 일어났대.”
“…….”
“안 갈 거야?”
내 물음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였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던 오이카와의 입에서 나온 것은 못 가겠어, 하는 울음 섞인 한 마디였다. 나는 더 묻지 않고 교실을 나왔다. 그 뒤에 하나마키의 교실을 찾아갔고, 이야기를 나눈 끝에 이와이즈미의 병문안은 내가 가게 되었다. 그 동안 하나마키는 오이카와의 옆에 있기로 했다.
눈 앞에서 사람이 날아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오이카와를 향해 달려오는 차를 본 이와이즈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가 오이카와를 밀치고 대신 치였다. 이후 차는 몇 번을 빙빙 돌아가 전봇대를 박고 찌그러 진 뒤에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문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든 나는 그대로 뛰어가 이와이즈미의 몸 위로 져지를 덮었다. 정신없이 시민 중 한 사람에게 신고를 부탁했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이카와는 제 정신이 아닌 건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츠카와가 오이카와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며 다시 시선을 돌렸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쓰러진 이와이즈미의 옆에 앉아 있었다.
병원에 도착한 이와이즈미는 곧장 수술실로 옮겨졌다. 나와 마츠카와는 정신없이 통화하며 사람들에게 이와이즈미의 사고 소식을 전했고, 오이카와는 그 와중에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입을 틀어 막은 오이카와는 정신 없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전화를 끊은 뒤 오이카와를 쫓아 뛰었다. 오이카와가 다다른 곳은 화장실이었고, 첫번째 칸에 들어가 변기를 잡은 채 속에 있는 것을 게워냈다.
먹었던 것을 모두 비우고 종국에는 위액까지 토한 오이카와는 천천히 일어나 변기 물을 내렸다. 그리고는 비척거리며 걸어 나와 세면대에서 입을 몇 번 헹궜다. 그 뒤엔 손을 씻다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무릎을 꿇으며 주저 앉았다. 화장실 밖에 있던 나는 안 쪽에서 오이카와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이즈미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다음 날 학교를 마칠 때가 다 되어서였다. 이와이즈미의 사고로 인해 오늘은 임시로 부 활동을 쉬기로 했다. 상의 끝에 마츠카와는 오늘 이와이즈미의 병문안을 가기로 했고, 나는 오이카와와 함께 집에 가기로 했다. 학교를 나서고 집에 가는 길 내내 오이카와는 말 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만 있었다. 오이카와가 평소에 좋아했던 빵집에 데려가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빵을 골라 계산해 가져올 때 까지도 오이카와는 조용히 앉아 테이블만 쳐다보고 있었다. 좀 먹으라며 앞에 빵을 밀어줄 때에야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이와이즈미는 괜찮을 거야. 네 탓도 안 할 테니까 좀 먹고 기운 좀 차려.”
내 말을 들은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어 나를 한 번 봤다가 다시 숙였다. 내 말에도 오이카와는 계속 자신을 탓 할 것이고, 이와이즈미에게 품은 죄책감을 지우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친구인데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이와이즈미도 마찬가지지만 오이카와도 내게 있어서 소중한 친구 중 한 명이니까.
“... 어떡해, 맛키?”
참담한 얼굴을 한 오이카와가 나를 불렀다. 그 얼굴은 울 것 같다기보단 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져버린 얼굴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오이카와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울음을 꾹 눌러 참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떼었다.
“이와쨩은,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좋아했잖아.”
“... 그렇지.”
“그 애가 좋아했던 걸, 내가 부숴버렸어.”
내게 말하는 목소리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를 끝으로 오이카와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나도 더 말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와이즈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이카와에게는 더욱 괴로운 일일 것이므로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네가 깨어난 이후 하루가 지나갔다. 아직 입원해 있는 너는 당연히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오늘의 부 활동은 너 없이 진행되었다. 부 활동 시작 전에 감독님은 너의 퇴부 소식을 전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입 안이 텁텁하고 목이 매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에도 속에서는 자꾸 토기가 올라왔다. 나와 합을 맞춰보던 킨다이치는 연습이 멈출 때마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고, 결국 코치는 내게 조금 쉬라며 나를 의자에 앉혀 두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네 생각이 났다. 나를 밀치고 차에 치여 날아가던 모습과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너는 죽을 때까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때 내가 조금만 주의했더라면 차에 치일 뻔 한 일도, 네가 대신 사고를 당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 채로 나는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부 활동이 끝나고 미적거리며 집에 갈 준비를 할 때 맛층이 다가왔다. 이미 준비를 다 끝내고 가방까지 멘 상태였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맛층은 잠시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가 입을 떼었다.
“이와이즈미한테 가.”
“... 어?”
“그 녀석이 전해주라고 했어.”
너라면 분명 자기 죄책감 때문에 올 생각도 못 하고 있을 거라고. 맛층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절로 실소를 뱉었다. 너는 정말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는구나. 하긴.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있었는데 당연하겠지. 고개를 들곤 애써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맛층에게 고마워, 하고는 부실을 벗어났다.
병실 앞에 서자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수도 없이 재생되었던 사고 당시의 기억이 다시 천천히, 선명하게 떠올랐고 미칠듯한 구토감이 밀려왔다. 결국 근처의 화장실로 달려가 또 속을 게워냈고, 입을 몇 번 헹군 뒤에야 다시 병실 앞에 설 수 있었다. 문 옆에 붙어 있는 네 이름을 한 번 보고, 눈을 감은 뒤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보이는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게임기를 두드리던 너의 손가락이 멈추고, 내 쪽을 돌아보려 할 때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너는 날 보면 뭐라고 할까. 나에게 욕을 퍼부을까. 옆에 놓여져 있는 물건들을 던질까. 증오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까. 네가 어떤 반응을 보이건 나는 달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 미안.”
네가 고개를 다 돌리기도 전에 나는 사과를 했다. 그 말에 너는 고개를 돌리려던 것을 멈췄다. 나는 너를 더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소리가 너무 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귀에 네 목소리가 내리꽂혔다.
“네가 왜 미안해?”
눈을 떴다. 고개를 들진 못했다. 네가 어떤 얼굴일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볼 자신이 없었다. 너는 다시 입을 떼었다. 담담한 네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미안해 할 필요 없어.”
“......”
“내가 원해서 한 일이야.”
네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침대 위에 앉아있는 네가 눈에 들어왔다. 너는 항상 그랬듯 무심하지만 다정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조용히 나를 보던 너는 내 이름을 입에 담았다.
“이리 와, 토오루.”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달려가 너를 끌어안았다. 너는 손을 들어 내 등을 쓸어 주었다. 따뜻하고 다정한 손의 온기에 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어깨에 얼굴을 묻자 너는 남은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울었다.
“왜 그런거야?”
“뭘?”
“뭐냐니,”
뻔뻔스레 되묻는 내게 무언가 말하려던 마츠카와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녀석의 입장에선 당연히 내가 답답하겠지. 아무리 오래된 소꿉친구라도,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대신 차에 치이기란 쉽지 않으니까. 앞으로 심한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그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그래도 나는 너를 원망할 생각은 없다. 그 당시에는 너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고, 그저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일 뿐이었다. 두 번 다신 배구를 할 수 없고 앞으로 평생 다리를 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참담했지만 결과적으론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목숨은 건졌으니까. 너도, 나도.
마츠카와는 무어라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녀석은 한참을 조용히 서있다 가방을 고쳐 메며 갈게, 한 마디 하곤 몸을 돌렸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그런 마츠카와를 불러 세웠다. 마츠카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내일 오이카와한테 오라고 해 줘.”
“... 오이카와한테?”
“어. 오이카와한테.”
그 녀석, 분명 자기가 좀 더 조심했어야 됐다면서 죄책감 때문에 나한테 올 생각도 못 할 걸. 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내 말을 들은 마츠카와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어, 하곤 병실을 나갔다. 문이 닫힌 뒤에 나는 다시 침대에 앉았다.
마츠카와의 말을 제대로 들은 것인지 너는 학교가 끝난 뒤에 찾아왔다. 내가 고개를 돌려 보기도 전에 너는 갈라진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쥐어 짜냈다. 나는 더 이상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내가 쳐다보면 너는 더 아파 할 것이었다. 낮게 한숨을 쉬고 입을 떼었다.
“네가 왜 미안해?”
너는 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의 빈 공간은 서로가 내뱉는 숨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네가 듣고 있는 것이라 믿고 계속 말을 이었다.
“미안해 할 필요 없어.”
“......”
“내가 원해서 한 일이야.”
고개를 돌려 너를 봤다. 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루만에 수척해진 얼굴이 네가 얼마나 힘들어 했을 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텅 빈 눈동자는 젖어 있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네가 안쓰러워 입을 떼어 이름을 불렀다.
“이리 와, 토오루.”
내 말에 너는 뛰어와 나를 끌어안았다. 등을 쓸어주자 너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를 쓰다듬자 어깨 부근이 젖어왔다. 기분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나쁠 리가 없었다. 네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래, 됐다. 이걸로 된 것이다.
이제 너는 평생 내 옆을 떠나지 못한다.
고작 동성애자라는 이유 하나로 너와 나는 교제 사실을 주변에 숨겨야 했다. 너는 교내에 팬클럽도 있을 정도로 인기가 꽤나 많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여자들과 이야기하는 너를 보며 속앓이를 할 때가 많았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군다나 너는 내게 고백을 하기 전에 여자친구를 꽤 많이 사귀어 본 지라 나는 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깨어나 사고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을 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평생 다리를 절게 될 것이란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너는 그 마음이 어떻든 평생 나를 떠나지 못 할 테니까. 그 마음이 죄책감이든, 사랑이든, 본질은 상관 없다. 중요한 것은 네가 내 옆에 있는 것이다. 이제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