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 너 또 안 자니? 조금 화가 난 듯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바로 침대 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쓴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방 문이 벌컥 열리고 어머니가 들어오신다. 이불을 뒤집어 쓴 나는 웃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을 꾹 참고 있다. 곧 이불을 들춘 어머니는 나를 보고 한숨을 쉬신다.
유우, 계속 이렇게 늦게 자면 키 안 큰다고 몇 번을 말 하니?
안 커도 돼요! 저는 더 놀고 싶어요!
내 대답에 어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으레 평범한 아이들은 키가 크지 않는다고 하면 곧바로 잠자리에 들건만, 나는 굳이 크지 않아도 상관 없다 하며 잠드는 것을 거부하니. 잠시 생각에 잠긴 어머니는 침대 옆에 앉아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유우는, 침대 밑에 사는 괴물한테 혼나고 싶어?
어머니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갸우뚱 했다. 침대 밑에 사는 괴물? 그런 것은 유치원에서도, TV에서도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어느새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있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조곤조곤한 어투로 말을 이어 가셨다.
침대 밑에는 그림자처럼 생긴 괴물이 살고 있어. 그 괴물은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는데, 유우처럼 늦게까지 안 자는 애들을 괴롭히는 걸 좋아한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날 정도로 시시한 이야기지만 당시의 나는 이빨 요정에게 기도하며 산타가 존재한다고 믿던 유치원생이었고, 그 이야기는 그런 유치원생의 얼굴이 파래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나는 얼른 침대 위에 누웠고, 어머니는 살짝 웃으며 내 몸 위로 이불을 덮어 주셨다.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어머니는 잘 자라고 인사하며 방을 나가셨고, 나는 빈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시계 소리를 세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깜깜한 시간이었다. 오늘의 경기는 오랫동안 이어진 탓에 나는 몸이 말이 아니게 지쳐 있었고,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대충 씻자 마자 침대 위로 쓰러져 잠들었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핸드폰으로 손을 뻗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네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잠들다 못해 기절한 수준이었다.
깜깜한 창 밖의 하늘을 보니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해 주셨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릴 때의 나는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아홉시 반, 늦어도 열 시에 자 버릇 했다. 산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된 날을 기점으로 침대 밑의 괴물도 어머니가 만들어 낸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몸에 밴 습관이란 것은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이제 침대 밑에 괴물은 없다는 것을 아는데도 나는 항상 일찍 잠들었다.
항상 일찍 잠드는 탓에 새벽의 하늘은 오랜만에 보는 터라 느낌이 신선했다.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퉁,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에 나는 몸을 일으켜 방 안을 둘러 보았다. 어디서 난 소리지? 꽤 가까이에서 난 소리였기 때문에 바람 때문에 뭔가 부딪힌 것이라고 생각했다. 곧 다시 한 번 퉁, 하는 소리가 났다.
일어나서 침대를 내려가려는 데 다시 한 번 퉁,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내 목으로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침을 삼키는 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다시 한 번 퉁, 소리가 났다. 그것은, 침대 밑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침대 밑 괴물의 존재를 상기해 낸다. 다시 한 번 퉁, 하는 소리가 들려온 순간 나는 침대 위에 엎드려 이불을 뒤집어 쓴다. 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한 것은 그 때였다. 퉁, 퉁, 퉁, 퉁. 소리들은 침대 밑에서 계속 빨라지고 있었다. 순간, 미친듯이 무언가 긁히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침대가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
나는 그저 이불 속에 숨어서 침대 밑의 ‘괴물’이 얼른 잠잠해지기를 빌었다. 지금 이 상황은 꿈이고, 나는 그저 어릴 때의 기억 속에 자리한 존재가 나오는 악몽을 꾸는 것이라고 미친듯이 믿었다.
시간이 지나자 침대 밑에서 나던 소리가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흔들리던 침대도 잠잠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두어 번 더 소리를 내고 느리게 한 번 움직인 뒤에야 조용해졌다. 긴장이 풀린 나는 그제서야 잠들었다.
눈을 뜬 것은 정오 즈음이었다. 학교엔 가지 않는 주말이었고, 오래 자서인지 몸은 가뿐했다.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순간 어젯밤의 일이 생각났다. 이불 속에서 덜덜 떨던 그 공포심이 떠올라 살짝 인상을 쓴 나는 침대 밑으로 내려왔다.
침대에서 내려오자 아래쪽이 신경 쓰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침대 밑에서 뭔가 부딪히고 긁는 소리가 나긴 했었다. 잠깐 고민한 나는 천천히 엎드려 침대 밑을 봤다.
벌떡 일어난 나는 핸드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가 붙잡는 소리가 들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침대 밑에는, 그 곳에 있었던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