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뒷산엔 어떤 집이 있는데, 거기에는 애들을 잡아먹는 마녀가 산대. 아주 어린 시절,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여자애가 애들을 모아 두고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들려준 이야기였다. 당시의 나는 그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어서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적당히 딴 짓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거짓말.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중앙 자리에 앉아 있던 덩치가 큰 남자애였다. 그 애는 동네 애들 중 가장 키도 크고 힘도 세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애였다. 그 남자애의 말에 여자애는 소리를 빽 질렀다. 진짜야! 빨간 달이 뜨는 밤이면 마녀가 일어나서 애들을 잡아먹으러 동네를 서성인다고 했어! 여자애는 그 광경을 제가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씩씩거리고 있었다.
마녀가 산다는 집은 아주 오래 된 것이었다. 엄마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다는 그 집은 옛날에는 사람들이 자주 오가고 아이들도 모여 곧잘 놀곤 했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의 왕래가 뚝 끊기게 되었다고 했다. 그 여자애는 그것이 마녀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자애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 애의 말에 속으로 어느 정도 동의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 집에 누군가 산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자애는 계속 자신의 말이 맞다고 했고, 남자애는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럼 내가 그 집에 갔다 와서 마녀가 없다는 걸 증명할게.
한참의 말다툼 끝에 남자애가 한 말이었다. 그 말에 여자애는 기겁하며 네가 잡아 먹힐지도 모른다고 했다. 남자애는 세상에 마녀 같은 게 어디 있냐며 코웃음을 쳤다. 그 날의 모임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며칠 뒤, 붉은 달이 떴다. 남자애는 당당한 걸음으로 마녀 같은 건 없다고 말하며 숲으로 향했다. 며칠 전의 모임에 나와 있던 애들은 모두 자신의 집 창 밖으로 그 남자애를 보고 있었다. 그 애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창문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애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서 마녀의 존재는 기정사실화 되었다.
아, 오늘은 붉은 달이 떴네.
부활동을 끝내고 집에 오는 길에 올려다 본 하늘엔 붉은 달이 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검푸른 색이어야 할 밤하늘은 달을 중심으로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구름도 없고 별도 뜨지 않아 그것이 괜히 더 섬뜩해 보였다.
오늘처럼 붉은 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십 년도 더 전의 일을 생각한다. 마녀 같은 건 없다며 뒷산으로 향했던 그 남자애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애에 대해서 나온 것은 산 어귀에서 발견된, 당시 유행했던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신발 뿐이었다. 몇 번의 유산 끝에 겨우 그 애를 낳았다는 그 애의 엄마는 신발을 꼭 쥔 채 오열했고, 몇 달을 시름시름 앓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그 일 때문인지 나는 붉은 달이 뜨는 밤이면 뒤숭숭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괜히 기분이 묘해져 빨리 집에 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는데,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졌다. 잠시 머리가 핑 도는 듯 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는 바로 앞에 있는 상대를 보며 입을 떼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저도 죄송해요. 앞을 보지 못 해서...
앞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만다. 나를 보는 그녀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나는 여자에 둔한 편이라 같은 부의 매니저 선배가 예쁘다는 이야기에도 그런가, 하곤 별 감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보기에도 눈 앞의 그녀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내가 멍하니 앉아있으니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곤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나는 우물쭈물하다 입을 떼었다. 못 보던 분인데... 다른 곳에서 오셨어요? 내 물음에 그녀는 빙긋 웃으며 일이 있어서 잠시 여기서 지내고 있어요, 했다.
나는 그녀와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종종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 자신의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이어 가던 대화가 끊어진 것은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였다. 말을 멈추고 두리 번 대다 보면 골목 안 쪽에서 울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나를 지나쳐 아이에게 다가갔다. 꼬마야, 왜 혼자 있어? 그녀의 물음에 아이는 제 아버지가 퇴근할 때가 되어 마중을 나왔다가 길을 잃었다고 했다. 아이를 다루는 데에 재주가 없는 나는 그녀가 하는 양을 신기하게 쳐다봐야만 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것인지, 능숙하게 아이를 달랬다. 아이의 손을 잡고 다가온 그녀가 미안하다는 얼굴로 입을 떼었다.
미안해요. 이제 가 봐야겠어요. 이 애는 제가 경찰서에 데려다 줄게요.
그럼 저도 같이 갈게요.
아직 학생이죠? 부모님 걱정해요. 잘 데려다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웃으며 내게 고개를 숙여 보인 그녀는 뒤를 돌아 아이와 걷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보던 나도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걸음을 멈춘 뒤 눈을 감곤 숨을 크게 쉬었다. 다시 뜬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색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