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역에 그 끔찍한 바이러스가 퍼진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시작은 구마모토현에서 올라온 것이라 밝힌 한 인터넷 영상이었다. 친구들끼리 장난을 치며 찍은듯한 영상의 초반부에는 한 중년 여성이 버스에 올라타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이후 친구들은 시시한 말장난을 주고받았고, 자리에 앉아있던 여성은 창밖을 보다가 별안간 고개를 푹 숙이고 움찔거리더니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며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던 여성은 문 근처에 서 있던 젊은 남성의 목을 물어뜯었고, 순식간에 버스 안은 수라장이 되었다. 쓰러진 채 비명을 지르던 남성은 곧 축 늘어졌고, 여성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여성은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를 마지막으로 영상은 끊겼다.
영상은 순식간에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터넷 등지로 퍼져 나갔고, 그러기도 전에 구마모토에는 바이러스가 퍼져 어떻게 손쓸 수도 없게 되었다. 곧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현재 그를 치료할 방법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곧 정부에선 급하게 특수부대를 설립했다. 당연히 많은 사람이 지원했다. 부대의 규모는 순식간에 커졌고, 곧 그들을 대상으로 훈련이 시작되었다. 감염자를 수용소에 격리하거나 심한 경우 사살하는 전투부와 바이러스의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 연구부가 특수부대 전부였다.
부대에는 많은 사람이 모였다. 소중한 이들을 지키러 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가족을 잃고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자신이 나라를 구원할 것이라는 유치한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도 있었다. 나는 집안의 권유로,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들어왔다. 유서 깊은 가문의 막내아들이 특수 부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가족의 명예를 드높일 것이다.
너를 만난 것은 2인 1실로 배정받은 기숙사의 방이었다. 전투원으로 들어온 나와 달리 너는 연구원으로 들어왔다. 가볍게 인사만을 나누고 각자 짐을 풀면서 그 날 하루를 보냈다.
너와는 금방 가까워졌다. 다른 부에 소속되어 있지만, 동기에 룸메이트다. 친해지지 않는 게 이상할 것이다. 점호시간 이후 각자 침대에 누웠을 때 네가 좋아하는 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 도화선이 되어 새벽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금방 친해졌다.
그러니 곧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입을 맞추는 사이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과를 마친 뒤 씻고 나면 우리는 손을 잡고 서로에게 기대 그 날 있었던 시시한 이야기들을 했고,아주 가끔 돌아오는 휴일이면 몸을 섞기도 했다.
너를 알아가고, 너에게 도취하며 하나의 다짐이 머릿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췄다. 네가 존재하는 이곳을, 나는 지킬 것이다. 집안의 교육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왔던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였다.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연구부 소속 대원들은 부대를 나갔다. 너의 말에 따르면 진척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딱 한 번, 바이러스를 소멸시키는 균을 발견했지만, 이는 인체에도 상당히 치명적으로, 평범한 세포까지도 소멸시킨다고 너는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즈음 너는 기숙사에서 가볍게 술을 마시며 조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부대에 들어왔다고 털어놓았다. 당연히 알 리 없는 이야기였다. 너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으니까.
-타케루… 내 조카는 그대로 수용소에 끌려갔고, 형수는 쓰러졌어. 그래서 형은 밤낮없이 일하고 있고.
-……
-형 가족이 그렇게 된 건 나한테도 충격이 커서, 꼭 타케루를 치료해주겠다고 다짐했어.
너는 그 뒤로 말없이 계속 술을 마셨고, 금방 취해 쓰러졌다. 침대에 너를 옮겨놓은 뒤, 자리를 정리하며 나는 그저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랐다.
반년 넘게 제자리걸음인 연구는 당연히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그동안 부대를 나가는 연구원의 수는 점점 더 늘었고, 그럼에 따라 한 사람이 짊어진 연구의 양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너는 더 욕심내서 많은 연구를 했고, 방까지 자료를 들고 와 들여다보곤 했다. 너는 가끔 짜증을 내게 되었고, 방에는 자연스레 두통약을 가져다 두게 되었다.
-… 조금 쉬는 게 낫지 않겠나.
-안 돼.
-……
-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감염자는 늘어나고 있을 거 아냐.
네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가 원해서 하는 일이지만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다. 그 날, 나는 연구에 몰두한 너를 두고 먼저 잠들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정부는 공식적으로 치료제와 백신에 대한 연구 중단을 선언했다. 국민의 절반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감염되었고, 치료제가 개발된다 해도 그 모든 사람에게 투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용소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부대는 해체되었고, 소속된 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부대의 해체 이후 너는 반쯤 제정신이 아닌 채로 비척거리며 걸었다. 나는 네가 안타까워 몇 걸음 뒤에서 따라가기만 했다.
한참 뒤에야 너는 걸음을 멈췄다. 네가 멈춘 곳은 미야기에서 가장 큰 수용소 근처였다. 너는 그곳에 조카가 갇혀 있다고 이야기했다. 너는 그곳에 멈춰 한참 동안 수용소를 보고 있었다. 나도 따라 그곳을 봤다. 문 앞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도망친 지 오래였다.
다시 시선을 돌리자 너는 그곳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둔하고 눈치도 없는 나지만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 들어 너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너는 들고 있던 짐도 떨어뜨리고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는 데에만 집중한 듯 보였다.
문 앞에서 너는 멈춰 섰다. 나도 함께 멈췄다. 너는 문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우시와카.”
“……”
“너는 지금 이 나라에 무슨 생각이 들어?”
“… 글쎄.”
“나는.”
“……”
“이 나라가, 정말로 저주스러워.”
그리고 너는 수용소의 문을 열었다. 동시에 안에 갇혀 있던 수많은 사람이 빠져나왔다. 아니, 저것들을 이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저것들은, 괴물이다.
동시에 나는 들고 있던 짐을 내던지고 너를 어깨에 들쳐멘 채 달리기 시작했다. 너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터져 나오듯 수용소를 빠져나온 사람들은 우리를 뒤쫓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그것들에 등이 오싹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소리가 멈춘 뒤에도 한참을 달리다 빈 폐건물 안에 들어선 후에야 나는 멈출 수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너를 내려놓는데, 너는 서 있지 못하고 쓰러졌다. 놀라서 주저앉아 너를 보니, 왼쪽 소매를 타고 흐른듯한 핏자국이 있었다. 급하게 옷자락을 찢어보니 피가 말라붙은 안쪽으로 깊은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
“… 물렸나.”
“그런가 봐.”
“괜찮은… 건가?”
“전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어지러워.”
이마에 손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인 비상식량 같은 것은 집어 던진 짐 안에 있을 터였다. 밖으로 나가니 바로 근처에 텅 빈 편의점이 보였고, 급한 대로 그곳에 들어가 초콜릿 바와 물 등을 가득 챙겨 나왔다. 다시 돌아가 하나를 건넸지만 너는 고개를 저었다.
“안 먹을래.”
“……”
“안 먹고 싶어.”
말을 마친 후 너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도 더 권하지 않고 초콜릿 바를 내려놓았다.
새벽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긴장한 상태로 잠이 든 탓에 작은 소리에도 금방 잠에서 깨어났다. 이 몇 달간, 비는 한 번도 내리지 않았었는데.
비가 내리니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그것들도 이런 날씨에 돌아다니진 않을 것이고 우리의 냄새도 빗물에 지워질 테니. 비가 그치고 나면 네 팔을 절단할 것을 찾으러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잔인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두면 너는 그것들처럼 감염될 테니까. 그나마 변이 속도가 느린 것이 다행이었다. 말라붙은 땅이 젖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삼 일째 비는 그칠 새를 보이지 않았다. 그 몇 달간 내내 무소식이었던 것을 충족이라도 하듯 그칠 줄을 모르고 세차게 내려댔다. 그러는 동안 너는 더 상태가 나빠졌다. 점점 시선은 흐려지고, 숨도 거칠어졌다.
“왜 안 도망가?”
“무슨 소리지?”
“나 감염된 지 꽤 오래 지났잖아.”
“……”
“이대로면 너 죽어, 나한테.”
그리고 너는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는 눈엔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있겠지. 나는 네 쪽을 완전히 돌아보며 입을 뗐다.
“상관없다.”
“… 뭐?”
“나는 애초에 네가 존재하는 이곳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
“너를 두고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내 말을 들은 뒤 너는 고개를 돌리며 벽에 머리를 기댔다. 비는 여전히 추적거리며 내렸고, 우리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 너는 입을 뗐다.
“미안해.”
“그래.”
“고맙고.”
“응.”
“사랑해.”
“… 나도.”
내 답에 너는 살짝 웃었다. 다음 순간, 네 눈은 괴물의 그것처럼 변했다. 너는 그대로 내게 달려들었고, 그 반동으로 나는 뒤로 쓰러졌다. 목을 물어뜯는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덮쳤다. 마지막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비가 내리는 회색 하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