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당신의 머리카락을 잡고 거칠게 흔들어 댔다. 당신은 눈꼬리 끝에 눈물을 매단 채 구역질을 하면서도 녀석이 하는 대로 끌려 다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만 있다가 소리를 죽여 문을 닫았다. 당신은 녀석을 사랑했고, 녀석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방으로 찾아가면 녀석은 어디론 가 사라져 있고, 당신은 혼자서 앉아 있다.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맞추고 앉으니, 살짝 젖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본다. 입가에는 녀석의 것이 흐르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한숨을 쉬고 당신의 입가를 닦아주니 여전히 눈물이 맺힌 눈으로 당신이 웃었다.
“고마워, 오사무쨩.”
“... 이런 거 이제 그만 해요.”
내 말에 당신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나는 당신의 입가가 깨끗해진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은 고개를 숙여 고인 눈물을 닦아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 보다가 입을 떼었다.
“키스해줘요.”
“... 지금?”
“네. 지금.”
내 말에 잠시 눈을 내리 깔았던 당신은 곧 내 목에 팔을 감아왔다. 그러면 나는 당신의 양 볼을 감싸며 입을 맞춘다. 짧은 키스가 끝나고, 닿아 있던 입술이 떨어지자 당신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사무쨩은 다정하구나.”
나는 대답하지 않고 방을 빠져나갔다. 당신은 여전히 녀석의 방 안에 있었다.
-저 사람, 나 좋아해.
녀석의 말을 들은 뒤에야 멀리서 이 쪽을 힐끔거리고 있던 당신이 눈에 들어왔었다. 눈치가 없지도 않고, 오히려 좋은 편이었는데도 당신이 녀석을 짝사랑하는 사실을 나는 늦게 알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당신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고, 그 모습을 본 녀석은 킬킬 웃었다.
다른 때였다면 웃고 있는 녀석에게 핀잔을 줬을 테지만 그 날은 어쩐지 그럴 수가 없었다. 흰 얼굴과 귀 끝을 발갛게 물들인 당신의 옆 얼굴을 계속 보고만 있었고, 녀석은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쯤부터, 녀석이 당신을 괴롭히기 시작했으려나.
얼굴은 똑같고 체구도 비슷하다. 다른 곳을 굳이 찾아 보자면 머리 모양과 목소리 정도. 하지만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당신은 나와 똑같이 생긴 녀석을 사랑한다. 녀석을 보며 나는 수도 없이 열등감에 휩싸였고, 당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종국엔 항상 참담한 심정으로 당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녀석이 옷을 챙겨 입으며 집을 빠져나가면 나는 다시 방으로 향한다. 당신은 항상 방 안에 앉아 있었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오늘의 당신은 많이 흐트러진 채, 고개 숙여 울고 있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것들이 아까 당신이 입고 있던 옷들이라는 것은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곧바로 다가가자 당신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 얼굴을 보자 당신은 팔을 뻗었고, 나는 얼른 당신을 품에 안았다.
“오, 사무, 흑, 쨩.”
“... 네.”
“나, 좀, 사랑해줘.”
내가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어. 제발, 나를 사랑해줘. 처절한 당신의 말에 나는 그저 팔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조금 울음을 그친 뒤에야 나는 입을 떼었다.
“나는요.”
“......”
“처음부터,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내 말에 당신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티셔츠의 어깨 부근이 젖어갔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래, 이걸로 됐다. 당신은 그냥 내 옆에서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