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는 대학을 자퇴했다. 과도 체육에 관련된 곳이었기 때문에 굳이 더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같은 팀에서 뛰어 왔던 멤버들이 자퇴보다는 그냥 전과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했지만 오이카와는 끝내 대학을 그만 두었다. 그 곳에서 같은 팀으로 뛰던 사람들이 자신 없이 코트에 서는 것을 보게 될 것이 더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오이카와의 자퇴는 반쯤 도망이었다.
대학을 그만 둔 이후 미야기에 돌아가려 이사 준비를 하는 중에 카게야마가 찾아왔다. 갑작스레 찾아온 뜻하지 않은 손님에 오이카와는 잠시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카게야마는 국가대표 져지를 걸치고는 잔뜩 긴장해서 굳은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가방 끈을 꼭 쥔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심드렁한 얼굴로 팔짱을 낀 오이카와가 입을 떼어 물었다.
“… 차라도 줘?”
“아, 감사합니다.”
사양 않고 즉각 인사를 하는 카게야마에 오이카와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 보통 이럴 땐 사양할 법도 한데 카게야마는 여전히 눈치도 없고 거절도 하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곤 들어와, 하며 옆으로 살짝 비켰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신발을 벗으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 바쁘니까 이것만 마시고 얼른 가.”
카게야마의 앞에 녹차를 놓아 준 오이카와가 테이블 맞은 편에 앉으며 말했다.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를 멀뚱멀뚱 보며 앉아 있었다. 한 쪽 눈을 살짝 찡그린 오이카와가 팔짱을 끼며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거야? 토비오쨩.”
“… 제가 할 말 있어서 온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거 말고 네가 나한테 올 이유가 없잖아?”
순수하게 놀란 얼굴로 자신을 보는 후배를 보니 어이가 없을 정도다. 머쓱한 얼굴로 뒷목을 긁으며 고개를 돌린 카게야마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잠시 망설인 카게야마가 머뭇거리며 입을 떼었다.
“… 킨다이치한테 들었어요. 그….”
사나운 외모와 다르게 유순한 후배는 말을 잇는 것을 망설였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카게야마를 보며 오이카와가 어깨 말이냐며 물었다. 카게야마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무거운 얼굴을 한 카게야마를 보며 오이카와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배구를 그만 둔 건 난데 왜 토비오쨩이 그렇게 힘든 얼굴을 해?”
“…….”
“오이카와 씨는 괜찮으니까 국가대표님은 그거 다 마시고 얼른 연습이나 가세요-.”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며 무슨 말을 해야 좋을 지 고르고 있었다. 시계의 초침이 얼마나 돌아간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어지고, 테이블에 놓인 녹차가 거의 식을 즈음에 카게야마가 입을 떼었다.
“저, 그 동안 오이카와 선배 말고는 무서운 사람이 없었어요.”
“…….”
“아무리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라도, 오이카와 선배에 비하면 그냥 그랬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해외에서도 욕심을 내는 대단한 사람들이, 오이카와 선배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걸로 보여요.”
여기까지 말 한 카게야마는 살짝 고개를 들어 오이카와의 눈치를 봤다. 오이카와는 조용히 카게야마를 보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입술을 말았던 카게야마는 다시 시선을 내리 깔곤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선배 덕분에 파트너에게 맞춰 주는 법도, 팀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법도 알게 되었어요.”
“…….”
“저는 앞으로도 선배를 뒤쫓아 갈 거예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오이카와에게 꾸벅 인사를 한 카게야마는 그대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오이카와가 따라 일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남은 것은 오이카와와 테이블에 놓여 있는 다 식은 녹차 뿐이다. 카게야마가 떠난 자리를 보며 오이카와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