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야마 토비오. 나이 21세. 히아시 국립 대학교 재학생이자 국가대표 배구 선수. 특이사항. 같은 중학교 출신인 두 살 연상의 연인과 교제 중. 최근의 고민. 애인이 너무 야하다.
카게야마의 말을 듣자마자 히나타와 츠키시마, 야마구치가 인상을 팍 썼다. 특히 최근에 애인과 헤어진 츠키시마는 그야말로 카게야마를 한 대 칠 수도 있을 듯한 얼굴이었다. 잠시 그런 츠키시마의 눈치를 보던 카게야마는 고민하다 한숨을 쉬곤 입을 떼었다.
“혹시 엘르(Elle) 알아?”
“엘르?”
“혹시 거기?”
요즘 인기 있는 란제리 브랜드. 히나타의 말에 카게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츠키시마는 배구밖에 모르던 네가 그런 것도 다 아냐며 어그로를 끌었고, 야마구치는 란제리라는 말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상태였다. 츠키시마를 확 쏘아본 카게야마는 한숨을 쉬었다.
“오이카와 선배가 거기 디자인 부서에 들어갔거든.”
“대왕님이?”
“그 사람 뭐 하는 사람이야...”
“? 내 애인.”
“아, 그러셔.”
카게야마의 대꾸에 인상이 더더욱 험악해진 츠키시마는 어그로도 포기하고 스무디를 입에 물었다. 한숨을 쉰 카게야마는 다시 카페오레를 마셨다. 웬만해선 잘 얘기하지 않는 애인의 이야기를 꺼낸 걸로 보아 꽤 많이 고민했음을 안 히나타가 그래서 대왕님이 어쨌는데, 하고 물었다.
“왜, 보통 신제품이 나오기 전엔 견본을 만들어 보잖아?”
“그렇지.”
“선배가 그걸 입고 와.”
카게야마의 말에 츠키시마가 스무디를 뿜었다. 히나타는 더럽게 뭐 하냐며 진저리를 쳤고, 야마구치는 테이블 위에 있던 냅킨을 들었다. 츠키시마를 보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숨을 쉬고, 히나타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카게야마를 돌아봤다.
“... 대왕님이 뭘 한다고?”
“란제리를 입는다고.”
확인 사살을 당한 히나타는 입을 쩍 벌리고 카게야마를 봤다. 츠키시마는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인상을 더욱 구겼고, 야마구치는 어색하게 웃으며 더러워진 냅킨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다시 한숨을 쉰 카게야마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게야마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고, 오이카와가 대학교를 졸업한 현재 시점까지도 계속 같이 살고 있다. 졸업과 동시에 엘르의 디자인 부서에 취직한 오이카와는 처음 견본품이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것을 입고 카게야마를 유혹하고 있다, 가 카게야마 토비오의 최근의 고민 되시겠다.
물론 카게야마도 남자라 좋긴 하다. 문제는 그 견본품들을 가져오는 텀이 점점 짧아진다, 이거다. 처음에는 한달에 한 두 개 정도만 가져오더니, 요즘은 거의 매일 가져오고 있다. 심지어 하루에 서너 개를 가져 올 때도 있다. 그 때마다 절망스러운 심정과는 반대로 아랫도리는 솔직하게 반응하니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요즘은 낮 수업과 연습을 제대로 따라가기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카게야마의 이야기가 끝나자 히나타, 츠키시마, 야마구치는 다시 인상을 구겼다. 고민이 있다고 해서 나왔더니 결국 들은 것은 카게야마와 오이카와의 특이하고 건강한 성 생활이었다. 미안한데 그 쪽 커플들의 섹스 라이프는 전혀 궁금하지 않거든. 냉정하게 한 마디 한 츠키시마는 제일 먼저 일어나 나가 버렸고, 다음은 아직 젊고 건강하니까 열심히 살라며 격려 아닌 격려를 한 히나타가 총총 나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야마구치는 어색하게 웃으며 힘내, 한마디 하곤 카게야마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 준 뒤 나갔다. 혼자 남은 카게야마는 테이블에 이마를 박았다.
도어락을 해제하고 문을 열자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신발장 옆에 가방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오이카와가 벌써 돌아온 모양이었다. 저 왔어요, 하며 집에 들어선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보자마자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왔어? 늦었네?”
“... 그건 뭡니까?”
“이거? 이번에 나올 신제품!”
자랑스레 말한 오이카와가 입고 있는 것은 검은 색의 레이스가 달린 코르셋 형태의 브래지어였다. 아래쪽에는 엉덩이와 성기를 아슬하게 가리고 있는 검은색 로라이즈 팬티를 입고 있고, 그 위에는 검은색 가터 벨트로 속이 살짝 비치는 스타킹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젠 아주 조금이지만 저보다 키도, 덩치도 큰 오이카와에게 맞는 속옷이 있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아랫도리는 동했고 카게야마는 절망했다. 그를 본 오이카와는 샐쭉 웃으며 카게야마의 목에 팔을 둘렀다. 선배... 저 내일 연습 경기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