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레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하늘이 뿔이라도 난 마냥 퍼붓고 있었다. 급한 대로 근처 건물의 처마 밑에 들어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는 거세졌다. 그 때 쯤이 되어서야 아침밥을 먹으며 봤던 일기예보가 기억이 났다. 오늘은 밤새 비가 오고, 새벽에나 날이 갤 것이라고 했다.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가방으로라도 비를 막고 갈까 고민할 때,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토비오?”
고개를 든 곳에는 중학교 시절의 선배가 있었다. 안쪽에 맑은 하늘 무늬가 프린팅 된 검은 우산을 든 선배는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니 집의 방향이 비슷해 중학생 때엔 종종 마주치기도 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비가 와서요.”
“푸흡, 토비오 너 설마 우산 없어?”
대답하지 않았다. 선배는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우산도 안 들고 오는 멍청이가 어디 있냐며 깔깔거렸다. 한참을 웃던 선배는 눈가에 살짝 맺힌 눈물을 닦으며 입을 떼었다.
“들어와.”
“네?”
“방향도 비슷하니까 데려다 줄게. 여기서 계속 서 있을 순 없잖아?”
“... 실례하겠습니다.”
선배가 들고 있는 3단 우산은 작은 크기라서 남자 고등학생 두 명이 쓰기엔 비좁을 수밖에 없었다. 선배가 불쾌해 할 것 같아 조금 거리를 두자, 어깨 쪽으로 다가온 손이 내 몸을 끌어 당겼다. 고개를 돌리니 선배가 살짝 입술을 비죽이고 있었다.
“감기 걸리려고 그래?”
“아니요. 선배가 기분 나쁘실까봐.”
“나도 많이 젖었거든? 이런 날은 멀쩡하게 집에 가는 게 더 이상하지. 내일 멀쩡하게 연습 하고 싶으면 바짝 붙어.”
선배의 말에 조금 주춤하다가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그제서야 만족한 듯 선배는 걸음을 떼었다.
비 냄새와 함께 늘 선배에게서 나는 향이 풍겼다. 선배가 중학생 때부터 쓰던 데오워터의 민트향에 머리가 조금 아찔해지는 것도 같았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선배가 나를 돌아봤다.
“왜 그래, 토비오?”
이 사람 목소리가 이랬었던가-
낮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빗소리에 묻혀 차츰 흐려진 목소리는 다시 새롭게 울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벌써 감기 걸린 거야?”
“… 그런가봐요.”
“그냥 빨리 뛰어가서 씻지.”
불쑥 다가온 선배의 손이 이마에 닿았다. 비가 내려 조금 쌀쌀한 탓에 손은 차가워져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서 있었다. 손이 떨어지자 고개를 갸우뚱 하는 선배가 눈에 들어왔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
“그래도 병원 가. 아니면 약이라도 먹던가.”
나는 짧게 대답했다. 낮게 웃은 선배는 다시 걸음을 떼었고, 나도 맞춰 걸었다. 나를 집에 데려다 준 선배는 약을 꼭 먹으라며 당부하고는 걸음을 재촉해 사라졌다. 나는 계속 서 있었다. 선배가 사라지고 남은, 조금 단 듯한 잔향이 비 냄새에 뒤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