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선배는 짜증을 내며 뒤로 드러누워버렸다. 선배의 핸드폰 액정에는 멍한 얼굴의 물고기 캐릭터가 떠올라
있었다. 대신 내 핸드폰 액정에는 선배가 핸드폰을 앞에 두고 절을 하면서까지 바라던 검은 고양이 캐릭터가
떠올라 있었다.
선배와
나는 몇 주 전부터 같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동물들이 나오는 아기자기한 게임이었는데, 뽑기로 얻은 캐릭터를 육성하여 전투하는 RPG 게임이었다. 선배도, 나도 게임을 그닥 잘 하는 편이 아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하다 보니 꽤 높은 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선배는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검은 고양이 캐릭터를 눈여겨보며 틈만 나면 10연속 뽑기를 돌렸다. 하지만 그 캐릭터는 선배도, 나도 꽤나 높은 레벨을 달성한 지금까지
한 번도 선배에게 나오질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 캐릭터를 다섯 번이나 뽑았다. 선배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어. 토비오! 네가 한 번 뽑아봐!”
결국
선배는 나에게 자신의 폰을 쥐어주며 대신 뽑아보라는 말을 했다. 내가 뽑는다고 해서 몇 주 동안이나
안 나왔던 캐릭터가 나오기나 할까. 내 생각은 그대로 들어맞았고, 새로운
뽑기를 돌려서 나온 열 명의 캐릭터 중에서 선배가 바라던 고양이 캐릭터는 없었다. 결국 선배는 짜증을
내며 다시 뒤로 드러누웠다.
“야, 카게야마!”
“왔냐, 멍청이.”
“빨리도
온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생 시절의 배구부 동급생들을 만났다. 몇 주 전에 히나타가 라인으로 3센치 컸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어떤 변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츠키시마는 히나타를 비웃었고, 야마구치랑 야치 씨는 그런 둘을 보며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던
중에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게임하느라 생명을 다 써버렸으니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빨리 보내주려고 게임을 켜자 야치 씨가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카게야마
군도 이 게임 해?”
“어? 어. 선... 애인이 하자고 하길래.”
“그렇구나. 나도 이 게임 좋아하거든.”
그러면서
야치 씨도 함께 게임을 켰다. 그러는 사이 나는 선배에게 생명을 보내줬고, 츠키시마는 내 핸드폰 액정을 보더니 안 어울리는 짓만 골라서 한다며 비웃었다.
내가 녀석을 확 쏘아보자 야치 씨가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
애, 카게야마 군 닮아서 볼 때마다 생각났거든.”
야치
씨가 보여준 것은 선배가 그렇게 뽑고싶어하던 검은 고양이 캐릭터였다. 야치 씨의 핸드폰을 본 히나타는
인정하기 싫지만 진짜 닮았다는 이야기를 했고, 츠키시마와 야마구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동안 나는 멍하니 야치 씨의 핸드폰 액정을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
왔어요.”
“왔어? 모임은 어땠어?”
“뭐… 좋았어요.”
“별로였구만.”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하는 말에 절로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선배의 앞에 앉으니
선배가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뭔데?”
“우리가
하는 게임이요, 야치 씨도 한대요.”
“그래?”
“그
때 들은 얘기인데, 그 검은 고양이요. 저를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 하아….”
내
말에 선배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돌아오는 말은 여태 그것도 몰랐느냐는 질문이었다. 예상 외의 답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선배는 다시 한 번 질린다는 얼굴을 했다.
“너는
뭐 때문에 내가 걔를 갖고싶었던 거라고 생각한건데?”
“생각
안 해봤는데요.”
“너
닮아서 뽑고 싶었던 거지, 바보야.”
선배의
말에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결국 선배가 그 캐릭터를 오랫동안 뽑고싶어했던 이유는 단순히 나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내 표정을 보며 낮게 웃음을 터뜨린 선배는 팔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그 게임 하지 마십쇼.”
“싫은데? 뽑을 때까지 할 거야.”
내
말에 선배는 짓궂게 한 번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선배를 보며 다시 한 번 입술을 비죽이다 숨을 한
번 내쉬고는 그를 안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