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 시절 내내 나는 그 애를 눈으로 쫓았다. 운동장 한 켠의 육상 트랙을 달리는 그 애를 훔쳐 보며 몰래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 바람에 날아오는 공을 보지 못해 맞고 쓰러지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졸업식 날에 나는 수없이 고민을 했다. 고백을 할까, 말까. 어차피 같은 고등학교를 갈 것이고 같은 앞 집에 살 테지만 졸업식, 이니까 고백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혼자 고민을 하는 사이,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같은 반의 타카하시였다. 같은 반이었지만 친하지도 않고 잘 모르는 애였다. 타카하시는 조금 붉은 얼굴로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걔를 따라갔다.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하자, 머뭇거리던 타카하시는 자신의 가쿠란에서 두 번째 단추를 뜯어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내가 얼떨떨한 얼굴로 서 있자 허리를 숙인 타카하시가 입을 떼었다.
-좋아합니다, 오이카와 양!
-… 에?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가능하다면 사귀고 싶어요!
말이 끝난 이후에 타카하시가 고개를 들었다. 긴장을 한 것인지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아져 있었다. 얼굴도 터질 것처럼 빨개져 있었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타카하시의 손에 다시 단추를 쥐어 주었다.
-미안, 타카하시 군.
-오이카와 양…?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미안해.
내 말에 타카하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내게서 돌려 받은 단추를 주머니에 넣은 타카하시는 들어줘서 고마워, 하곤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나를 지나쳐 사라졌다. 타카하시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 나도 걸음을 떼었다.
-토오루, 여기 있었어?
-스, 스가쨩?
-뭘 그렇게 놀라? 가자. 이와이즈미 기다리겠다.
멍하니 걷던 내 어깨를 잡은 것은 그 애였다. 그 바람에 나는 꼼짝 없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까 얘기 다 들었을까? 들었다면 그냥 고백 해 버릴까?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던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애의 가쿠란이었다.
그 애의 가쿠란 두 번째 단추는 없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 다른 애한테 고백을 했구나. 이제는 나보다 커진 그 애를 올려다 보았다. 그 애는 정말로 아무것도 듣지 못 했는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 아무것도 못 들었으면 됐다. 나는 좋아해, 한 마디를 입 속에 담아 둔 채 그 애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 애는 한 번도 여자친구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고백, 실패 한 걸까. 몇 번이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 애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 애와 나는 친구 사이였다. 점심시간이면 같이 도시락을 먹고 부활동을 쉬는 날에 같이 집에 가는, 그런 평범한 친구 사이.
4월의 끝 무렵에 나는 고백을 받았다. 그 애를 상대로 한창 첫사랑을 앓고 있을 때였다. 내게 고백을 한 사람은 배구부에 속한 동급생 애였다.
-… 내가 왜 좋은데?
-입학식 때, 너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
내게 고백을 한 애는 현 내에서 알아주는 배구 강호교 출신이었다. 전국 3대 스파이커에 들어간다고도 했던 것 같다. 고백을 들으며 나는 그 애를 생각했다.
나와 그 애는 친구였다. 그 애가 이사 온 뒤 처음 만난 사람은 나였고, 나는 그 애에게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친구일 것이고, 평생 변함 없을 것이다. 내 앞의 배구부 애를 올려다 보며 나는 입을 떼었다.